모범택시(2021) 드라마가 해결되지 않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식

모범택시(2021)는 “통쾌한 복수극”이라는 인상으로 먼저 소비되기 쉽지만, 저는 이 드라마의 핵심이 통쾌함 자체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작품은 사회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사건을 단순히 대리 해결해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도가 만든 공백을 서사의 전제로 삼고 그 공백이 사람들의 감정과 선택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보여 줍니다. 그래서 모범택시의 재미는 사건의 결말보다, 그 결말이 왜 필요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살아납니다.

이 글에서는 줄거리 요약을 최소화하고, 모범택시가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에 집중해 분석합니다. 특히 제도의 공백을 출발점으로 삼는 구조, 피해자 시선을 중심에 놓는 대리 응징의 설계, 그리고 “완전한 해결” 대신 질문을 남기는 서사 선택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제도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서사의 출발점으로 삼는 구조

모범택시는 문제를 “발생”시키는 데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미 피해가 발생했고, 그 피해가 제도 안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이 출발점이 중요한 이유는, 드라마가 사회 문제를 한 편의 사건처럼 닫힌 이야기로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도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끝난 사건’이 아니라 ‘계속되는 상태’로 남고, 피해자는 그 상태를 매일 견디며 살아갑니다. 모범택시는 바로 이 잔여 상태를 서사의 핵심 동력으로 삼습니다.

이때 드라마가 보여 주는 것은 “법이 나쁘다” 같은 단순한 결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법과 제도가 완전하지 않다는 현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특정한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공백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제도의 공백이란 단지 판결이 늦거나 처벌이 약한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고를 해도 믿어 주지 않는 시선, 피해자를 설명해야만 하는 절차,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까지 포함합니다. 즉,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제도의 한 지점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태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범택시는 그 지점을 “사건의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전제”로 놓습니다.

이 구조는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는 감정 위치도 바꿉니다. 보통 범죄물은 ‘범인을 잡는 과정’에 몰입하게 만들지만, 모범택시는 “왜 잡히지 않았는가”, “왜 해결되지 않았는가”를 먼저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쌓이면, 대리 응징이라는 장치가 단순한 사이다가 아니라 ‘공백을 메우는 임시 구조’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모범택시가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비교적 정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척하면서도, 문제의 근원을 계속 노출하는 방향으로 서사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범택시의 세계관은 “정의가 작동하는 사회”가 아니라 “정의가 누락되는 순간이 반복되는 사회”를 전제로 합니다. 이 전제가 유지되는 한, 이야기의 초점은 개인의 분노나 영웅성에 머물지 않고, 왜 이런 서비스가 필요해졌는지라는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보여 주는 각도’인데, 모범택시는 그 각도를 제도의 공백에 고정함으로써 사건을 구조로 읽게 만듭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심에 놓는 대리 응징의 방식

모범택시의 대리 응징은 “복수”라는 단어로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 작품의 응징은 단지 가해자를 처벌하는 장면이 아니라, 피해자가 사회 안에서 잃어버린 목소리를 다시 말하게 만드는 장치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이 모범택시를 단순한 통쾌극과 구분 짓는 핵심이라고 느꼈습니다. 응징의 목적이 분노의 해소에만 있지 않고, 피해 경험을 ‘사건’이 아니라 ‘삶’의 문제로 다시 자리 잡게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범죄 서사에서 피해자는 “사건의 이유”로만 소환되고, 이후에는 해결 과정에서 뒤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범택시는 피해자가 중심에 서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피해가 어떤 방식으로 일상을 파괴했는지, 피해자가 무엇을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순간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방식으로 감정의 축을 피해자 쪽에 둡니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의 관심도 “가해자가 얼마나 나쁜가”에서 “피해가 얼마나 깊게 남는가”로 이동합니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이 이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문제의 본질이 처벌의 강도보다, 피해가 남기는 지속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리 응징은 동시에 불편함을 동반합니다. 법 밖에서 정의를 실행하는 방식은 언제든 폭력과 닮아질 수 있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위험도 있습니다. 모범택시는 이 불편함을 완전히 지워 버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 점이 오히려 설득력을 높인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대리 응징이 언제나 완벽하게 정당하고 깔끔하게 해결된다면, 드라마는 사회 문제를 ‘해결된 이야기’로 만들고 끝낼 가능성이 커집니다. 하지만 모범택시는 피해자 중심의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그 방식이 가진 불안정함을 함께 보여 줌으로써 질문을 남깁니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방식이 필요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또한 모범택시의 응징은 단순히 “가해자에게 되돌려 주는 것”에 머무르지 않도록 구성됩니다. 응징은 피해자의 감정이 정리되는 과정과 연결되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감정이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피해자는 응징을 통해 즉시 행복해지지 않을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더 복잡한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모범택시는 사회 문제를 “사이다로 해결”하는 대신, 피해자 감정의 잔여를 남겨 둡니다. 저는 이 잔여가 드라마를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느꼈습니다.

정리하면, 2번 소제목은 제목과 매우 강하게 연결됩니다. 해결되지 않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심에 놓는 방식”이며, 모범택시는 대리 응징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 방식을 서사적으로 구현합니다. 즉, 이 소제목은 제목을 구체화하는 핵심 파트로 기능합니다.

해결되지 않음 자체를 남기는 서사의 선택

모범택시가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지점은, 모든 것을 “완전한 해결”로 닫지 않는 태도입니다. 대리 응징이 성공적으로 보이는 순간에도, 드라마는 해결 이후의 공허함이나 불안정을 완전히 지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회 문제는 한 사람을 응징했다고 사라지는 종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가해를 처벌해도, 그 가해가 가능했던 구조는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모범택시가 이 사실을 의식적으로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서사 선택은 모범택시를 단순한 범죄 해결물에서 사회적 질문을 남기는 이야기로 만들고, 동시에 시청자에게 감정의 두 층을 경험하게 합니다. 한 층은 통쾌함입니다. “적어도 누군가는 대신해 주었다”라는 감정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다른 층은 불편함입니다. “왜 대신해 주어야 했는가”, “왜 제도가 그 역할을 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이 두 층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모범택시는 단순히 소비되고 끝나는 사이다가 아니라, 뒤늦게 생각을 불러오는 작품이 됩니다.

해결되지 않음을 남기는 방식은 ‘끝맺음’의 감정에도 영향을 줍니다. 모범택시는 사건이 마무리되더라도, 그 사건이 남긴 감정의 흔적을 완전히 닫지 않으려 합니다. 피해자의 삶은 사건 이후에도 이어지고, 어떤 상처는 회복되기보다 형태를 바꿔 남습니다. 이때 드라마는 “응징이 곧 치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응징은 최소한의 복원, 혹은 뒤늦은 인정일 수 있다고 제시합니다. 저는 이 태도가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사회적 고통을 단순한 장르적 쾌감으로만 소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범택시(2021)는 해결되지 않은 사회 문제를 ‘사건’으로만 보여 주지 않고, ‘구조’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제도의 공백을 서사의 출발점으로 놓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심에 배치하며, 해결 이후에도 남는 질문을 남기는 선택을 통해 사회 문제를 다룹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통쾌함과 불편함을 함께 품고, 그 모순을 끝까지 유지합니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란 결국, 무엇을 숨기지 않고 무엇을 남겨 두는가의 문제인데, 모범택시는 “남겨 두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오히려 더 현실적인 질문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이 점 때문에 모범택시가 단순한 사이다 드라마를 넘어,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으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결은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며, 드라마는 그 과정의 결핍을 끝까지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