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아신전(2021) 아신의 증오가 만든 서사의 출발점

 

킹덤 아신전(2021) 드라마 포스터 이미지

킹덤 아신전(2021)은 “스페셜 에피소드”라는 형식 자체가 말해 주듯, 하나의 사건을 새로 만들기보다 기존 세계관의 빈칸을 채우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 빈칸이 단순한 설정 설명이 아니라 감정의 기원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아신전이 “아신이라는 인물의 전사”를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킹덤 세계가 왜 그렇게 잔혹한 방향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감정’으로 설득하는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여기서 감정은 가벼운 동정이나 즉각적인 공감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세계관을 움직이는 동력입니다.

이 글에서는 줄거리 요약을 최소화하고, 아신의 증오가 어떻게 서사의 출발점이 되는지를 구조적으로 분석합니다. 첫째로 아신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세계의 조건을 살펴보고, 둘째로 배신과 상실이 증오로 고정되는 과정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그 증오가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선택으로 이어질 때 어떤 의미가 생기는지 짚어 보겠습니다.

아신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세계의 조건

킹덤 아신전이 먼저 보여 주는 것은 “아신이 어떤 사람인가”보다 “아신이 어떤 조건 속에 놓였는가”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물 서사가 강해 보이는 이야기일수록 사실은 환경과 구조가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신전에서 북방의 경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는 조건이 흔들리는 공간입니다. 경계는 늘 불안정하고, 불안정한 공간에서는 규칙이 선명하게 작동하기보다 권력의 필요에 따라 흔들립니다. 그 흔들림은 ‘누가 보호받는가’라는 질문을 매번 새로 쓰게 만듭니다.

이때 아신이 놓인 자리의 특징은 한마디로 “보호의 바깥”입니다. 제도와 권력이 손을 내밀지 않는 영역에 놓인 사람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거나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겨우 ‘유용한 존재’로 취급되기 쉽습니다. 저는 아신전이 이 조건을 개인의 불운으로 설명하지 않고, 세계의 작동 방식으로 보여 준다고 느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생적으로 중심에 있고, 어떤 사람은 태생적으로 주변에 있으며, 주변은 언제든 희생될 수 있다는 전제 말입니다. 이런 전제에서 “증오”는 이상한 감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단단하게 굳히는 방식이 됩니다.

또한 경계의 폭력은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누적되는 생활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차별은 한 번의 모욕이 아니라 매일의 규칙이 되고, 불안은 한 번의 위협이 아니라 늘 깔린 공기처럼 존재합니다. 저는 이 반복이 인물을 바꾼다고 봅니다. 사람은 큰 사건 하나로만 변하지 않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늘 그럴 수 있다’는 감각이 일상을 점령하는 순간입니다. 아신전은 바로 이 감각을 통해, 아신의 증오가 개인의 성격이나 선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합니다.

정리하면, 아신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세계의 조건은 “경계의 불안정함”과 “보호의 바깥에 놓인 삶”이며, 그 조건이 지속될수록 감정은 부드러워지기보다 날카로워집니다. 이 작품은 증오를 감정의 과잉으로 처리하지 않고, 구조가 낳은 결과로 보여 줌으로써 서사의 출발점을 단단하게 고정합니다.

배신과 상실이 증오로 고정되는 과정

아신전에서 증오는 갑자기 폭발하는 감정이 아니라, 고정되는 감정으로 그려집니다. 저는 이 “고정”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 약해질 수도 있고, 슬픔은 형태를 바꿔 다른 감정으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증오는 다른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증오는 ‘되돌릴 수 없음’을 자각하는 순간, 마음속에서 하나의 규칙처럼 자리 잡습니다. 아신전은 바로 그 규칙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신과 상실의 누적을 통해 보여 줍니다.

배신은 단순히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리는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 더 큰 배신은 “기대가 무너지는 방식”입니다. 보호받을 수 있다는 기대, 설명될 수 있다는 기대, 최소한의 공정함이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질 때, 사람은 사건 자체보다 세계를 믿지 않게 됩니다. 저는 아신전이 이 불신의 형성을 꽤 집요하게 다룬다고 느꼈습니다. 누군가의 악의만을 강조하기보다, 기대가 붕괴하는 구조를 보여 줌으로써 증오가 개인의 감정이 아닌 ‘세계 인식’이 되어 가는 과정을 설득하기 때문입니다.

상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상실이 감정으로만 남으면 애도나 슬픔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상실이 “설명되지 않음”으로 남으면 다른 감정으로 굳기 쉽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실, 누구도 제대로 말해 주지 않는 상실, 사라진 뒤에도 다시 반복될 수 있는 상실은, 결국 ‘의미’를 잃습니다. 의미를 잃은 상실은 슬픔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때 증오가 등장한다고 봅니다. 증오는 상실의 의미를 다시 붙잡는 마지막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증오의 방향이 정해지는 순간입니다. 증오가 방향을 갖게 되면, 감정은 더 이상 흘러가지 않고 목표를 갖습니다. 이때 인물은 ‘무엇을 잃었는가’에서 ‘무엇을 되돌려야 하는가’로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저는 아신전이 여기서 단순한 복수 서사로 넘어가 버리지 않고, 증오가 삶의 규칙이 될 때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까지 함께 보여 준다고 느꼈습니다. 증오가 강해질수록 인물은 흔들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선택하기 어렵게 됩니다. 즉, 증오는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지만, 마음을 좁히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아신전의 배신과 상실은 “사건”이 아니라 “고정 장치”로 기능합니다. 그 장치가 반복될수록 감정은 흘러가는 대신 굳어지고, 굳어진 감정은 세계관을 움직이는 동력이 됩니다. 아신의 증오는 이 지점에서 서사의 출발점이 됩니다.

증오가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선택으로 이어질 때

아신전이 “서사의 출발점”으로 강하게 기능하는 이유는, 아신의 증오가 개인의 내면에서 끝나지 않고 선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선택이야말로 킹덤 세계관의 핵심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킹덤의 세계에서는 재난이 단지 외부에서 떨어지는 불행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조건과 선택이 누적되어 폭발하는 결과로 그려집니다. 아신전은 그 누적의 한가운데에 “감정”을 놓습니다. 즉, 세계관의 확장은 설정의 확장이 아니라 감정의 확장으로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증오가 ‘도구’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증오 자체는 감정이지만, 감정은 혼자서 세계를 바꾸지 못합니다. 감정이 세계를 바꾸려면, 감정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합니다. 아신전은 그 수단이 단지 판타지적 설정의 장치가 아니라, 인물의 의지와 결합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 줍니다. 저는 이 결합이 주는 무게가 크다고 느꼈습니다. 재난의 기원이 단순한 자연현상이나 괴이한 현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감정과 선택에 의해 “의도적으로” 방향을 갖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선택은 세계관의 규모를 넓히는 동시에, 킹덤 시리즈 전체의 윤리적 긴장을 강화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질문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어떤 선택이 가능했는가”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아신의 선택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쉽게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 모순이 작품을 더 오래 남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시청자는 아신에게 감정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지만, 동시에 그 감정이 만들어 낼 결과를 생각하게 됩니다. 즉, 공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깁니다. 이 감정의 이중 구조가 바로 킹덤 아신전이 프리퀄로서 강한 힘을 갖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출발점’이라는 말은 단지 시간 순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신전이 보여 주는 출발점은 세계관의 감정적 원점입니다. “왜 이 세계는 이렇게까지 무너졌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사건의 설명이 아니라 감정의 기원으로 제시합니다. 저는 이 방식이 설정 설명보다 훨씬 설득력 있다고 느꼈습니다. 설명은 머리에 남지만, 기원은 마음에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신전은 킹덤 시리즈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이전에 재난으로 보였던 것들이, 누군가의 선택과 감정의 결과로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킹덤 아신전(2021)은 아신의 증오를 단순한 복수 감정으로 소비하지 않고,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선택의 출발점으로 배치합니다. 경계의 조건이 감정을 만들고, 배신과 상실이 감정을 고정시키며, 고정된 감정이 선택을 통해 세계로 번져 갑니다. 이 흐름이 곧 아신의 증오가 만든 서사의 출발점이며, 동시에 킹덤 세계가 가진 비극의 근원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저는 그래서 아신전을 “설정 해설”로만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세계관의 정보를 추가하는 대신, 세계관이 왜 그런 윤리와 폭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감정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의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킹덤이라는 시리즈가 재난을 다루는 방식이 결국 인간을 다루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